-페미니즘과 지리학 (문명텍스트 7; 한길사, 2011년) -지은이: 질리언 로즈 -옮긴이: 정현주
『페미니즘과 지리학: 지리학적 지식의 한계』는 젠더의 지리학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지리학의 젠더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근대 지리학이 남성중심적이라고 선언하면서, 여성을 지리학적 지식의 대상에서뿐만 아니라 지식생산의 주체로서도 배제해 온 맥락에 대해 파헤친다. 로즈에 의하면, 지리학에서 이러한 배제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남성중심성의 형태로 전개되어 왔는데 하나는 사회적-과학적 남성중심성이고, 다른 하나는 미학적 남성중심성이다. 전자는 1950년대 계량혁명이후 지리학을 지배해 온 논리실증주의적 접근에, 후자는 논리실증주의적 접근에 대한 대안이자 비판으로 흔히 인식되는 인간주의 및 문화지리학에 배태되어 있다. 양자의 차이는 지배적 주체가 타자와 맺는 방식에 있을 뿐 상호보완적으로 지식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전자는 타자를 제거함으로써, 즉 여성적인 것을 지리학의 연구주제에서 배제함으로써, 후자는 타자를 언급하되 상상속의 전형으로 잘못 재현함으로써, 즉 여성적 타자를 은혜로운 모성이나 남성중심적 권력에 반기를 드는 일탈적 주체로 한정시킴으로써 결국 합리적 분석을 위한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존재로 규정하여 여성을 지식생산의 영역에서 배제하였다. 전자는 지리학 이외에도 많은 학문분과에서 페미니즘 접근이 주요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온 접근이다. 이 책의 분석이 특별히 빛을 발하는 지점은 후자, 즉 미학적이고 문화적인 감수성을 갖추고 심지어 여성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기도 하는 지리학이 어떻게 남성중심적인 시각과 세계관으로 구조화되었는지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저자는 ‘장소’라는 인간주의 지리학의 영원한 탐구과제가 바로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왜곡된 여성상을 상징하는 개념임을 드러내고 이 신비스럽고, 난해하며, 향수를 자극하며, 두렵기까지 한 ‘장소’야 말로 남성적 주체의 자기모순과 분열을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은 대안적인 공간적 상상을 통해 남성적도, 여성적도 아닌 수많은 타자에게 열린 지리학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근대 이후 남성중심적 지리학이 구축해 온 젠더화된 이분법을 해체하고, 대신 그 자리에 전복적이고, 유연하며, 중첩된 (로즈의 표현으로 하자면 역설적인) 공간을 상상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