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물 Publications

단행본[역서]사랑에 빠진 여인들 원제 : Women in Love
저자손영주
출판사을유문화사
출판일2014-10-20
ISBN978-89-324-0402-8 04840
첨부파일사랑에_빠진_여인들.jpg (59.5KB)
석탄가루가 휘날리고, 로빈 후드가 숨어드는 숲에 둘러싸인 마을
제인 오스틴의 문학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문학이 시작되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을유세계문학전집 70번째 작품으로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문학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문학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가 보이는 페미니즘적인 시각 때문이다. 소설 속의 두 여인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기대보다는 남자에 대한 불신과 결혼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보인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한번쯤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경험일지도 모르고, 그나마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며 불안한 속내를 웃음으로 감추는 이들 자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사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외형상 어슐라와 구드룬 두 자매가 겪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세기말적 분위기와 국가와 민족 간의 새로운 개념 정립에 관한 논의, 아울러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대두되었던 연애관과 결혼관의 변화와 이제 막 태동되기 시작한 페미니즘적인 시각에 이르기까지 이 작품은 그저 단순한 연애담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의 정치, 역사,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화두들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의 생각에 새로운 자극을 부여한다. 또한 작가가 다루고 있는 이러한 주제들은 20세기를 지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단순한 연애 이야기 이상으로 읽게 된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 이처럼 복합적인 여러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시 작가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지리적 여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가 태어난 영국 중부 노팅엄셔의 탄광촌 이스트우드는 산업 혁명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언제나 시커먼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동시에 로빈 후드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셔우드 숲과 들판,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기도 했다. 이러한 문명과 자연, 이성과 감성이 뒤섞여 공존하는 곳에서 성장한 작가의 내면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 작품이 1차 세계 대전 중에 쓰여진 것을 고려하면 작품 전반에 흐르는 권태와 우울의 정조도 이해가 된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불모의 감정을 전염병처럼 나누어 갖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그리는 사랑 이야기는 제목이 ‘사랑에 빠진 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로맨틱하지 않은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 이처럼 이 작품에는 인간의 본성과 외적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얽혀 서로를 비추고 재생산하는 현대 사회의 메커니즘에 대한 작가의 암울하지만 예리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집요하게 진리의 밑바닥까지 캐내어 들어간 광부와 같은 작가
말하려는 마음과 들으려는 마음 어디쯤에서 머무는
낯설고 새로운 사랑과 생의 진실을 말하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에는 모두 세 개의 사랑 이야기가 존재한다. 중등학교 교사인 어슐라와 런던에서 조각가로 명성을 쌓다가 고향에 잠시 돌아와 언니와 같은 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구드룬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전후까지 여성의 재산권, 교육권, 선거권을 주장하는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결실로 등장한 ‘신여성’들이다. 그러나 이들 자매는 자기실현의 성취감이나 해방감보다는 수많은 현실적 장애물을 더 의식하고 있다. 이는 로렌스가 대학과 교사 시절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동료나 지인들을 통해 목격한 당대 여성의 현실을 반영한다. 새로운 관념으로 무장하고 있던 이들 자매들의 사랑은 흔한 소설에서 보이는 해피엔드와는 다른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어슐라와 장학관 버킨 커플과 구드룬과 탄광 재벌가의 장남인 제럴드 커플은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은 커플이다. 전자는 요란한 싸움과 평화의 순간을 오가다 결혼하고, 후자는 조용히 그러나 훨씬 더 격렬한 애증의 소용돌이를 겪다가 마침내 결별과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두 쌍은 묘하게 닮은 구석도 많은 데다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아서 각각이 갖는 관계의 의미는 서로를 같이 놓고 생각할 때 한층 풍부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관계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별들의 평형’ 타령만 하는 버킨은 어슐라의 화를 돋우며, 구드룬과 제럴드는 제어할 수 없는 육체적 욕망과 증오, 자학과 가학을 오가며 지배와 복종의 시소게임을 벌인다.
마지막으로 소설에서 보이는 세 번째 사랑은 동성 간인 버킨과 제럴드의 관계에서 간접적으로 비춰진다. 사실상 이들은 또 한 쌍의 커플이라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버킨과 제럴드는 서로에 대해 강렬한 감정을 느끼지만 소설 속에서 이를 온전히 담을 언어가 이들에게도, 작가에게도, 그리고 이들이 사는 세상에도 아직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제럴드와 버킨의 이루어지지 못한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감정과, 양성애자 뢰르케에 대한 극심한 혐오에는 통상적인 이성 간의 사랑 이상의 교감을 향한 작가의 혼란스러운 열망과 고뇌가 배어 있다.
천재적 작가들의 경우가 대개 그러하듯 로렌스의 성취를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서구 문명의 종말을 직감하면서도 새로운 삶의 비전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한 영혼의 치열하고 처절한 고투를 담고 있으며, 현대 서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가차 없는 해부와 극복을 모색한 영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걸작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